숙종은 왕위에 오른 후에는 남경 수축, 서경 우대 등을 통해 중앙 귀족을 견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여진 정벌을 선포하며 북벌을 여러 차례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중앙의 문벌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측근 위주의 행정을 전개하였고, 여진과 잦은 전투로 국력을 소모하는 등의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후에 예종, 인종 시기에는 측근 세력의 강화로 폐단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전도감
주전도감은 고려 시대에 설치된 돈을 만드는 관청으로, 대각국사 의천이 주전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1101년(숙종 6년)에 설치되었습니다. 이전에는 1907년에 의천의 건의를 받아 주전관을 두고 돈을 만드는 일을 연구하게 했는데, 주전도감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돈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102년(숙종 7년)부터 주전도감은 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해동통보를 생산했습니다. 이어서 해동중보, 삼한통보, 삼한중보, 동국통보, 동국중보 및 은병을 생산했습니다. 동전 생산은 경제의 안정과 국가 재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주전도감은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조직으로 작용했습니다. 고려 시대의 주전도감은 새로운 통화 체계를 도입하고 통일화된 동전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돈의 생산은 당시 국가의 안정화와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이는 향후에도 고려 시대 경제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고려 초기까지 여진족
고려 초기까지 여진족은 주로 북방에서 이따금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거란처럼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큰 위협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종 때부터 여진의 위협이 강화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동여진 완안부가 이러한 위협의 핵심이었습니다. 숙종 시기에는 여진이 정규군을 동원하여 고려에 대한 침공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등 위협적인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숙종은 여진에 대항하기 위해 임간과 윤관에게 군대를 지휘하도록 명령하여 천리장성 근처에서 여진을 격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고려군은 여진을 쫓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역으로 공격을 받아 패전을 거듭했습니다. 이에 윤관은 고려군이 보병 위주로 편성된 문제로 분석하였습니다. 여진은 기병 위주로 편성되어 강력한 기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고려군도 기병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건의는 고려 조정에 받아들여지고 고려군 역시 윤관의 제안에 따라 강력한 기병을 갖추어 여진에 대항하게 되었습니다. 별무반은 기존의 정규군과는 별개의 조직으로, 임시전투부대였습니다. 평민이라도 역량이 있으면 누구든지 받아들여졌으며, 전투마를 보유한 장정은 권세가의 자제라도 모집되었습니다. 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을 중심으로 여러 특수병 부대가 존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기군은 기병대로 전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수병 부대에는 사궁(활을 사용하는 궁병), 경궁(활의 크기에 따라 나뉜 궁병), 정노(정교한 크기의 노를 사용하는 부대), 강노(크기와 위력에 따라 나눠진 노병 부대)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석투(투석 부대), 철수(끓는 쇳물을 사용하여 적을 막는 부대), 발화(화공 부대), 도탕(돌격 부대) 등의 다양한 부대가 존재했습니다. 특히 신기와 항마를 제외한 나머지 병력은 주로 신보권과 항마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신보군은 주로 일반 농민 출신인 백정들로 구성되었고 항마군은 수원승도라 불리는 하급 승려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특수병 부대의 등장은 고려의 군사제도에서 중요한 변화를 나타내며 여진과의 전투에 대비한 고려의 준비를 보여주었습니다. 고려는 여진족과의 전투를 대비해 꾸준한 훈련을 통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별무반을 이용하여 여진 정벌을 단행했습니다.
1907년 도선이 도참설을 제기
1907년 도선이 도참설을 제기하여 남경 천도를 주장하자 숙종은 남경으로 수도를 이전하고자 하였습니다. 풍수지리 전문가인 김위제는 <도선기>, <도선답산가> 등을 인용하여 천도를 주장했습니다. 1104년에 남경 별궁이 준공되어 숙종이 직접 남경에 행차하기는 했으나 남경은 서경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중심지로 인식되지 않아 정치적인 논의만 거친 채 흐지부지 끝났으나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여 왕궁을 조성하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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