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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강화도 조약(1976)

by 아이비ivy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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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수호조규는 1876년 2월 27일에 조선과 일본 제국 간에 체결된 조약으로, 통칭으로는 강화도 조약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병자수호조약으로도 불리며,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 중 하나입니다.

 

 

이양선은

이양선은 18세기 후반부터 조선 연안에서 나타났습니다. 주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서양 상선들이었으나, 19세기 후반에는 조선에 대한 통상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866년에는 미국의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면서 약탈을 저지르고, 평양 군민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1866년에는 독일인 오페르트가 아산만에 상륙하여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파헤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오페르트 도굴 사건). 서양인의 도발이 빌미가 되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와 같은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고 이 어려운 상황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 시기에 일본은 미국의 무력시위에 굴복하여 개항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정변이 발생하고 신정부가 구성되었으며, 메이지 유신을 통해 부국강병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류큐를 병합하고 조선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준비하였습니다. 강화해협에서 일본 군함인 운요호가 나타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운요호사건은 이후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 문제로 이어집니다. 1867년에 메이지유신을 통해 구성된 일본은 조선에 외교문서를 보내왔지만, 이 문서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따라 외교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흥선대원군이 대외강경책을 추진하고 있던 시기여서 외교문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일본은 자국 정권의 권위와 정당성을 손상할 수 있는 문제로 이 외교 분쟁을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국은 상호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지고, 일본 내부에서는 조선에 대한 무력 침공을 주장하는 정한론이 대두되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왜양일체론이 대두되었고, 양국 간의 갈등은 계속해서 심화하여 갔습니다. 고종은 대외정책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는데, 이는 주로 일본과의 외교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 나타났습니다. 박정양은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파견하여 일본과의 외교 실무를 담당하게 했고, 일본 외교관과의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흥선대원군 계열의 일부 인사들을 제거하고 외교 갈등을 해결하려 했지만, 대신들 사이에서는 신중론이 우세했고 흥선대원군은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고종이 흥선대원군의 저항 속에서도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왜양일체론이 여전히 강세를 보였습니다. 외교 교섭은 제자리걸음을 하며 왜관에서 머물러 있던 일본은 외교를 주장하여 1875년에 운요호 등 군함을 조선에 파견했습니다. 조선 정부는 항의했지만 무시당하고, 운요호는 강화도로 접근하며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1876년 2월, 운요호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무력시위를 통한 협상을 강요했습니다. 조선은 청의 권고를 받아 협상에 응했고 강화도에서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협상은 20여 일간 진행되어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조일수호조규' 또는 '병자수호조약'으로 불리며, 주요 내용으로는 조선국은 자주국가로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일본은 사신을 수시로 조선에 파견한다, 부산항 외에 2개의 항구를 개방하고 통상을 허용한다, 일본인의 치외 법권을 인정한다, 조선에서 일본 화폐를 통용시키고 관세를 없앤다 등이 있습니다. 강화도 조약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먼저, 일본이 말한 '조선국은 자주국가'라는 문구는 일본의 대륙침략을 염두에 둔 문구였습니다. 또한 불평등한 내용이 많아 조선에 불리한 조약이었으며, 특히 관세에 대한 규정이 없어 현실적인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이후 국내 상인에게 부과되던 세금을 일본에도 부과하려 하자 일본이 강력히 항의를 제기하며 사태가 심각해지고, 관세 문제가 현실적인 세금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김홍집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인천 개항 문제와 연계돼 일본이 응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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