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삼도수군통제사까지 올랐습니다. 이순신은 여러 지위에서 활약하며 임진왜란을 맞게 되었고, 이때의 뛰어난 전략과 능수능란한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며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노량 해전에서의 전사 이후에도 그의 공적은 꾸준히 인정받았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6세기 말에 일본을 통일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6세기 말에 일본을 통일하고 군사적인 위업을 이룬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명나라를 침략하고자 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한 가지 견해는 일본의 지배자들이 가지고 있던 군사력을 외부로 보내 국내 안정하고 권력을 강화하여 신흥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명나라를 침략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도요토미는 명나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협상을 제안했으나 조선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는 가도입명,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명목상의 도로로서 조선을 통과하는 것을 뜻하는데 조선은 이를 거절함으로써 일본의 군사적인 행동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교섭이 결렬된 후, 159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군대 약 20만명을 동원하여 조선에 침공했습니다. 이순신은 일본군의 침략 소식을 듣고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전라좌수영에 속한 함대를 총집결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파발을 이용하여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 왜의 침략을 알렸습니다. 이후 함대를 수영 앞바다에 총집결하도록 명령했으나 이미 일본군은 전라도 앞바다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일본군에 의해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함락되었고, 이일은 상주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고 10일 만에 경상도가 일본군에게 넘어갔습니다. 믿었던 신립마저 충주의 탄금대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하고 전사하였고 이에 따라 초기에 일본군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조선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일본군의 작전은 육군과 수군이 협력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일본군은 한양을 점령하고 여러 도시를 정복하여 본거지로 삼았습니다. 조선은 전쟁 상황이 불리해지자 여러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선조는 백성들을 버리고 도성을 버리고 도주하자 분노한 백성들은 궁궐을 불태우고 노비들도 자신들의 노비문서를 불태웠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조선의 군사적인 대응에 당혹스러워하며, 백성들이 저항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옥포해전은 이순신이 임진왜란에서 처음 승리한 것으로 알려진 전투입니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함대가 옥포항에 정박 중이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26척을 침몰시키고 포로들을 구출했습니다. 이 전투가 일어난 시점에서 조선 조정은 평안도로 도망가고 있었고 임진강 방어에도 실패하여 일본군이 황해도까지 진격하게 되는 이 상황에서 이순신은 옥포해전에서의 승리로 조선군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부 일본군 함선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으나 전체적인 전세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이순신은 일본군을 격침했습니다. 비록 일본군은 큰 손실을 보았지만 여전히 서해안으로 북상을 시도하였고 이순신을 사천에 있는 일본군을 추격했습니다. 이 사천전투에서 거북선이 최초로 도입되었고 결과적으로 적 함대 13척을 모두 격침하였습니다. 한산도 앞바다에서 처음 학익진 전술로 일본군을 격침하였는데 이 전투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이다.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는 바람에 남은 함선이 12척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조가 수군을 폐지할려고 하였으나 이순신이 아직 12척이나 남아있다고 말하면서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전열을 정비하였습니다. 이순신은 배 1척을 더 얻어 총 13척으로 물살이 빠른 울돌목, 명량 해협이라고도 부르는 곳에서 일본군 330여 척을 격퇴하였습니다. 아군의 배는 한 척도 격침되지 않은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명량대첩으로 승기가 기울은 조선 수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노량해협에서 또다시 격퇴하면서 1592년부터 시작된 긴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대첩에서 이순신은 일본군의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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