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은 즉위한 후 대신에게 국정을 총괄하게 하고 전국에 관원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돕는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 군의 조세를 면제하는 등의 혜택을 주었습니다. 또한 분황사, 영묘사를 세우는 등의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황룡사 9층 목탑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 시대에 삼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소원과 포부가 담긴 건축물입니다. 이 목탑은 643년에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자장이 황룡사에 탑을 세우고자 한 뜻을 밝혔습니다. 선덕여왕은 군신에게 의논하였고 신하들의 제언으로 백제에 보물과 비단을 청하고 공장을 파견하여 목재와 석재를 확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탑은 거대하게 건축되었고 9층까지의 높이는 약 53m, 상륜부를 합하면 약 67m에 달했습니다. 당시의 당척이나 동위척으로 따진다면 80m 이상으로 초대형 건축물이었습니다. 이 목탑은 신라가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었던 상황에서도 한반도 통일의 원동력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불타며 소실되었고 현재는 초석만이 남아 있습니다. 중앙의 심초석에서는 금동사리함이 도난당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리함에는 황룡사 9층 목탑의 조성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를 통해 목탑의 위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첨성대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세워진 건축물로, 월성 북쪽에 신라 왕궁 인근에 축조되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362개의 화강암 벽돌을 사용하여 원통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높이는 9m이며, 밑면 지름은 약 5m입니다. 27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꼭대기에는 우물 정 모양의 2층 천장돌이 있습니다. 첨성대는 내부 구조도 독특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13층에서 15층까지는 정남향의 네모난 문이 있으며, 이 문을 기준으로 12층이 아래에 위치하고 13층이 위에 위치하여 중간에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을 통해 사다리를 이용하여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12층까지 흙이 채워져 있으며 19층과 20층 그리고 25층과 26층은 장대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첨성대는 기록에 따라 별을 관찰하는 천문대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고 여겨왔습니다. 초기에는 별 이견이 없이 오래된 천문대로 인정받았으며 그 견해에 따르면 목조 건조물이 세워져 혼천의가 설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개방식 '돔'으로서의 관측대로서 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첨성대의 구조는 계절과 태양의 위치와 관계없이 일구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고 4가지 계절과 24절기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첨성대의 목적에 대한 견해는 다양합니다. 하늘에 대한 천원지방설에 따라 축조되었다고 여겨지며, 27단의 구조는 선덕여왕이 27대 왕임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양한 견해와 제언들로 인해 현대에는 첨성대가 단순히 현대적 천문대의 기능뿐 아니라 신라 시대의 점성술과 제의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분황사
분황사는 634년인 선덕여왕이 즉위한 지 3년인 해에 완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간에 이 해에 완공되었다는 기록과 처음 지어졌다는 기록 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은 634년이 절의 완공 시기이며 분황사는 이미 그 전, 진평왕 말기에서 선덕여왕 즉위 사이의 기간부터 공사에 착수한 상태였을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선덕여왕이 분황사 건립을 발원하고 착공한 것보다는 진평왕의 시대에 이미 분황사의 창건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2008년에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는 분황사 석탑 남쪽에서 중문 터가 확인되었으며 분황사는 석탑, 금당, 중문 등이 남북 일직선에 위치한 가람 배치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분황사는 황룡사와 가까이 위치하며 선덕여왕의 묘는 분황사 동쪽에 있습니다. 선덕여왕 대에는 당에서 귀국한 자장이 주석을 맡아 분황사에서 활동했으며 원효도 이곳에서 저술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후 분황사는 황룡사와 함께 신라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분황사는 황룡사와 황룡사지, 첨성대 등이 위치하여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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