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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최충헌의 봉사10조, 교정도감, 도방

by 아이비ivy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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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은 고려 시대에 최 씨 정권의 초대 집권자로 진강후에 봉해져 최고 실권자로 군림했습니다. 이러한 권력 장악 측면에는 가장 성공한 무신정권 집권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됩니다. 최충헌은 최 씨 집권자 중에서도 막대한 권위를 가진 인물로, 그에게는 "영공"이라는 특별한 칭호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최충헌의 거대한 영향력을 보여주며, 그의 권력이 얼마나 독보적이었는지를 시사합니다. 최충헌은 이전 집권자들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어 권력을 차지하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최충헌의 봉사 10조

최충헌의 '봉사 10조'는 그가 이의민을 제거하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후 왕에게 제안한 열 가지 개혁 방안입니다. 최충헌은 무신정변 이후 나타난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 이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 지은 궁궐에 길일을 택하여 들어갈 것, 관리에게 줄 녹봉이 부족하므로 원래 제도를 복구하여 관리의 수를 줄일 것, 벼슬아치들의 토지 겸병으로 인한 폐단이 많으므로 토지대장에 따라 원주인에게 돌려줄 것, 지방에 유능한 수령을 파견하여 향리와 권세가의 횡포를 금지하게 할 것, 공물 진상을 금지하여 각 지역 관리가 공물 진상을 구실로 약탈 하지 못하게 할 것, 승려의 왕궁 출입과 곡식 대여를 금지하며, 불사를 관장하는 것과 백성에게 고리대 하는 폐단을 없앨 것, 관리들의 능력을 가려 유능한 자는 박탈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징벌할 것, 신하들이 저택과 복식에 사치가 많으니 검소한 생활을 할 것, 함부로 사찰을 건립하는 것을 금할 것, 신하의 간언은 용납할 것, 이 개혁안은 현재의 체제와 그동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최충헌은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가 자신의 정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최 씨 무신 정권의 세습 기반을 갖추기 위한 명분으로 쓰였습니다. 최충헌은 최 씨 무신 정권을 강화하면서도 각 지방에서 발행한 항쟁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최 씨 정권

최 씨 정권은 여러 차례 음모와 암살 시도에 직면하면서도 약 6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최충헌의 동생인 최충수와 외조카인 박진재도 음모에 연루되어 제거되었고 최충헌 본인도 여러 차례 암살 시도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충헌은 국가의 안정과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조처를 했습니다. 1198년 만적이라 불리는 최충헌의 집 노비가 음모를 꾸미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만적의 난). 이에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에도 여러 차례 암살 모의가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최충헌은 1209년에는 교정도감을 설치하였습니다. 교정도감은 최충헌이 자신에 대한 역모를 조사하고 처리하기 위한 별도의 기구로 활용되었습니다. 교정도감은 최충헌이 정치, 사회, 경제 등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핵심 기구로 기능했습니다. 교정도감은 최충헌의 명령에 따라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그 기능은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최충헌의 후계자인 최우와 최항도 교정도감을 이용하여 권력을 확장하고 백성들로부터 공물과 세금을 거두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교정도감은 안정과 권력 유지를 위해 설치된 조직이었지만, 동시에 최충헌 정권의 특정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고려 시대의 무신정권 집권자들

고려 시대의 무신정권 집권자들은 일반적으로 별다른 사병 조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일으킨 쿠데타나 정변에 참여한 병력은 주로 일반 관군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경대승이라는 인물이 도방이라 불리는 특별한 사병 조직을 조직했습니다. 경대승이 정중부 일파를 살해한 후, 일부 무신들이 그를 찬양하고 적대적인 세력을 나타내자, 경대승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도방을 조직했습니다. 이 도방은 경대승의 신변 호위뿐만 아니라 정보 수집과 반대파 숙청에도 동원되었습니다. 이 도방은 경대승의 정권이 무너진 1183년에 해체되었습니다.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후, 1200년에는 경대승의 도방이 본격적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최충헌은 경대승의 도방을 신변 보호와 정권 안정을 위해 다시 조직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이전 도방과는 비교할 수 없이 대규모로 더욱더 조직적이었습니다. 최 씨의 권력 유지를 지원하는 주요 지주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근위대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최우의 시대에는 도방이 확장되고 강화되었으며, 최충헌의 도방을 외도방이라 하여 조직을 확장 강화했습니다. 내도방은 신변 보호를 담당하고 외도방은 친척과 외부 경비를 담당하였습니다. 최항의 집권 시기에는 내, 외 도방을 합쳐 36번 확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도방은 1270년에 폐지되었습니다. 도방은 무신 정권의 호위와 집권체제 강화를 위해 존속했으며,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도방이 직접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원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 무신정권이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도방은 무신정권의 출발에서 형성되어 무신정권의 몰락과 함께 해체되었습니다. 이 기구는 무신 정권의 집권체제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지만, 주로 최 씨 권력의 지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부정적인 평가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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