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

순조, 세도정치의 시작

by 아이비ivy 2023. 12. 2.
반응형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1790년에 탄생했습니다. 11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고, 1800년에 정조의 죽음으로 11세에 국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어린 나이로 즉위했기 때문에 대왕대비 김 씨(정순왕후)가 3년간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정조와 의빈 성씨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서 태어난 문효세자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 이후 현목수빈 박씨와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 순조를 얻습니다. 정조는 정비에게서 후사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하였지만, 순조는 후궁 출신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로, 어린 시절 평탄한 환경에서 교육받아 국왕의 역할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세자로 책봉될 때까지 몇 차례 대신들의 건의를 거절하고, 순조가 자신이 세손으로 책봉된 나이가 될 때까지 몇 차례 대신들의 건의를 거절하고, 순조가 자신이 세손으로 책봉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1800년 11세로 왕세자로 책봉된 순조는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1세의 나이에 국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순조는 국정 운영에 있어서는 미숙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순왕후는 남인 세력을 정리하고, 사도세자 사건에 대한 노론 벽파의 의리를 대변하였습니다. 또한 왕권 강화의 중요한 군사 기구인 장용영을 없애버렸습니다. 순조가 1804년에 15세가 되면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직접 정사를 돌보면서 정국이 변화했습니다. 이때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는 벽파 세력과 대립하며 권력 담대한 김조순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안동 김씨는 현목수빈 박씨의 친정인 박준원 가문과 협력하여 권력을 확장했고, 풍양 조씨도 김달순 공격에 참여하여 안동 김씨와 협력관계를 형성했습니다. 김조순은 비변사에서 실권을 행사하고 규장각을 장악하는 등 권력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장용영의 남은 군사력을 활용하여 훈련도감의 재정을 늘리며 세력을 강화했습니다. 순조는 1808년에 성년이 되면서 국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재정, 군제, 토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만기요람'을 편찬하게 했습니다. 민폐를 보고하도록 각 도에 암행어사를 파견하고, 1809년에는 수령, 감사, 유수들에게 민폐 해결 방안을 보고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순조는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예정의 군병을 늘리려 하였으나 김조순 가문의 반대로 취소되었습니다. 1810년에는 궁궐의 호위를 담당하는 무예청의 군병을 늘리는 계획을 추진했고, 1811년에는 오우도총부를 강화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순조는 강화된 강, 응제, 제술 등의 시행을 통해 하급 관료에 대한 관심을 높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학문과 모임을 통해 하급 관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신료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정에 대한 관심을 높였습니다. 순조는 1811년 10월에 국정 개혁을 추진하려는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신하들은 강제를 과도하게 실시한다고 비판하며 국왕의 노력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고, 특히 김조순은 군사력을 늘리려는 순조의 노력을 저지했습니다. 순조는 1808년에 지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행어사를 파견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는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민폐를 조사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개혁에 대한 보고가 없었고, 국왕이 개혁에 직접 참여하려는 노력은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1811년부터 7년 동안은 한재와 수재가 겹치고 전염병이 만연한 시기였으며, '홍경래의 난'으로도 알려진 사태는 순조를 난처하게 했습니다. 또한 1812년에는 안동 김씨가 권력을 독점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로써 안동 김씨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사라지면서 권력 구조가 불안해졌습니다. 순조는 건강이 악화하고 국정 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1814년 이후 국정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신료들의 국정 참여 요청에도 불구하고 순조는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1819년에는 임선이 권력자의 손아귀에 공사의 결재가 들어갔다는 비판을 했고, 순조는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임선은 반격을 받아 유배당하게 되었습니다. 순조는 효명세자에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를 국왕과 신하들을 만나는 자리와 국가 제례 등에 세자를 참여시킴으로써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길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효명세자에 대해 부여된 권한은 역대 대리청정에 비해 크며, 이는 순조의 정치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단서로 해석됩니다. 순조는 효명세자에게 권한을 넘겨 왕권을 강화하고 세도정치를 극복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을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강화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나 효명세자의 노력은 1830년에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나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효명세자의 죽음 이후 정치의 주도권은 다시 외척 세력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순조 또한 아들을 잃은 비탄 속에서 4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효명세자의 아들인 헌종이 즉위했지만, 그의 어린 나이로 인해 왕권은 다시 약화하였습니다.

반응형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도령, 철종  (1) 2023.12.02
조선 헌종, 왕권 강화 실패  (2) 2023.12.02
정조의 정치, 경제, 사회정책  (1) 2023.11.30
사도세자와 영조, 임오화변  (0) 2023.11.29
영조의 탕평책  (1) 2023.11.29